아짐 프렘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
이름 | |
생년월일 | |
출생지 | |
국적 | |
거주지 | |
학력 | |
소속 | 위프로 (1966. – ) |
직위 | |
겸임 | |
가족 | 배우자: 야스민 프렘지 |
슬하: 2명 | |
연봉 | |
재산 | $19.6billion (한화 약 23조 8000억원)[2] |
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1945년 봄베이 출생으로 당시 식용유 비누 등을 제조하던 기업의 운영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2년 미국 유학길 올라 스탠포드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4학년이던 1966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인도로 돌아가게되었다. 여기서 자료마다 기록이 다른데 다시 스탠포드 대학교로 돌아가 1967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는 기록이 다수지만 어디서는 아버지가 후계자로 지목하여 돌아가지 못하고 곧바로 기업경영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어쨌든 아버지의 사후 기업의 오너직을 물려받았으며 1977년 인도 사회당이 IBM을 몰아내면서 기업이 전환점을 마지게되었는데 사명을 현재의 wipro로 바꾸고 PC산업에 뛰어들었으며 1980년도부터 IT산업에 뛰어들었으며 90년대 중반부터는 기업인수를 통해 종합IT기업으로 성장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진출하였다. 2010년 들어서는 에너지사업에도 진출해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에 대형 제조사를 두게되었다.
무케시 암바니회장이나 락시미 미탈회장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인도를 대표하던 부자였지만 도요타 자동차를 몰고 이코노미석을 이용할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정치계와 어떠한 유착관계도 없이 오래전부터 자선활동을 해온 인물로 여러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고향 벵갈루루에는 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키워내기도 했다.
1962년 미국 유학길 올라 스탠포드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4학년이던 1966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인도로 돌아가게되었다. 여기서 자료마다 기록이 다른데 다시 스탠포드 대학교로 돌아가 1967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는 기록이 다수지만 어디서는 아버지가 후계자로 지목하여 돌아가지 못하고 곧바로 기업경영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어쨌든 아버지의 사후 기업의 오너직을 물려받았으며 1977년 인도 사회당이 IBM을 몰아내면서 기업이 전환점을 마지게되었는데 사명을 현재의 wipro로 바꾸고 PC산업에 뛰어들었으며 1980년도부터 IT산업에 뛰어들었으며 90년대 중반부터는 기업인수를 통해 종합IT기업으로 성장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진출하였다. 2010년 들어서는 에너지사업에도 진출해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에 대형 제조사를 두게되었다.
무케시 암바니회장이나 락시미 미탈회장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인도를 대표하던 부자였지만 도요타 자동차를 몰고 이코노미석을 이용할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정치계와 어떠한 유착관계도 없이 오래전부터 자선활동을 해온 인물로 여러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고향 벵갈루루에는 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키워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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